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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흡 칼럼 나이듦의 지혜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김종길 시인의 ‘설날 아침에’다. 또 한 살 먹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보노라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이게 내 얼굴인가. 노년의 저 깊고 견고한 주름. 지난 시간에 의하여 그 부드러움을 박탈당한 저 메마른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표정은 무엇인가. 저 무력하고 완강한 침묵. 이 세상에 대하여 일체의 발언권을 박탈당한 듯한 저 ‘벙어리 됨’속에는 어떤 호소가 숨어있는가.     노인들을 보고 있으면 슬퍼진다. 외롭거나 불쌍한 노인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도 늙어가고 있고, 또 주변에서 노인 소리를 들으면서 비롯된 강박관념이랄까. 행복한 노인도 슬프긴 마찬가지다. 마음까지 비추는 거울이 없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퍽 다행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 앞에서 누구나 자신만만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 거울을 멀리한지도 오래 되었다. 나도 노인 소리 들으면서부터는 사진 찍기가 싫다. 공개되어야 할 사진을 찍기는 더욱 싫다. 두렵기조차 하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인간이면 어느 누구도 늙음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을. 육체의 나이를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든 정신의 성숙도 함께 꾀해서 나이 들어 진실로 지혜롭고 멋진 노인이 되어야 하리라.     지난 2018년 국내에서 개봉된 후지하라 켄지 감독의 〈인생 후르츠〉는 우리에게 '노년'의 삶에 대한 방식을 일깨워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일본의 배우 키키 키린이 내레이션을 한 영화는 할머니의 흙 예찬론으로 시작된다. 90세 할아버지 슈이치와 87세 할머니 히데코. 두 사람의 나이를 합하면 177세. 65년을 함께 산 노부부는 집 텃밭에서  50여 가지 과일과 70여 가지 채소를 가꿔 식탁에 올리고 이웃과 나누며 살아간다. 노부부는 숲으로 둘러싸인 15평 규모의 아담한 삼나무 단층집을 짓고 50년째 살고 있다.     슈이치 할아버지는 ‘조종실’이라고 부르는 작업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기록 마니아답게 자잘한 일상부터 논문, 설계도 같은  작업의 기록까지 흔적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는 매일 평균 10통의 손편지를 직접 써서 보낸다. 단골 생선가게 주인에게까지 덕분에 잘 먹었노라는 감사 편지를 생생한 그림까지 넣어 보내기도 한다. 히데코 할머니는 요리, 뜨개질, 베틀 짜기까지 공을 들여야 하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손녀에게  손수 음식을 만들어 보내고, 또한 공들여 키운 먹거리를 아낌없이 주변에 나눈다.   노부부가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태풍으로 마을이 수몰되자 정부에서는 고지대에 뉴타운을 조성하는 계획을 세운다. 뉴타운 건축 책임을 맡게 된 슈이치는 야산이었던 그곳의 녹지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도시를 계획한다. 하지만 젊은 건축가의 소박한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밀집형 아파트로 채워진 뉴타운,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슈이치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대신 300평의 땅을 샀다. 그로부터 50여 년, 과일 50종에 채소 70종을 키우며 그곳을 자연으로 꾸렸다. 그리고 뉴타운 단지 뒤의 민둥산에 도토리나무를 심어 무성하게 가꿨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 차근차근 천천히.’     농작물이 잘 자라려면 흙이 좋아야 한다는 할머니의 지론은 아파트 단지 속  뉴타운에 숲을 만들기 위해 지난 50년의 세월을 살아온 할아버지의 건축론으로 이어진다. ‘집은 삶의 보석상자여야 한다’영화에 소개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정의다. 할아버지에게 보석상자로서의 집은 ‘자연친화적’인 안식처다. 그의 꿈은  결국 개발에 밀려났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차근차근, 시간을 모아서 50년 동안 자신의 꿈을 심었다.     슈이치가 평생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 반려자인 히데코가 있었기 때문이다. 월급이 4만 엔이던 시절에 70만 엔짜리 요트를 사겠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았던 아내 히데코다. 영화가 시작할 때 그녀의 나이 87세, 그 세대의 여성들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남편을 받들고  순종하는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전형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히데코의 삶이 그저 전근대적 여성의 숙명적 삶이라고만 여겨지지 않는다. 〈인생 후르츠〉가 2018년 서울국제음식영화제에 초빙 받을 정도로, 매 끼니 밥을 먹는 남편을 위해 죽순 덮밥에서부터 생딸기 케이크, 푸딩에 이르기까지 진수성찬을 차려내는 건 '의무'의 경지를 넘어선다.     슈이치는 뉴타운 건설 과정에서 건축가로서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거기서 좌절하여 뜻을 꺾는 대신, 그 이후 50년에 걸쳐 '나 하나만이라도'라는 뜻을 가지고 자신의 집을 자연의 품으로 돌려주기로 했다. 자신과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이면 도시 전체가 다시 '자연'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주도적인 삶의 방식에서 아내 히데코 역시 가족에게 좋은 것이 곧 자신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풍성한 밥상을 차려주지만 자신은 단출한 토스트 한 조작으로 한 끼를 대신하는 알뜰함도 잃지 않았다.   평생을 함께해온 부부. 하지만 장어덮밥을 먹고 잠든 남편 슈이치는 다음 날 눈을 뜨지 않았다. 아내는 담담하게 남편을 보낸다. 대신 오래도록 남편의 영정 앞에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마련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 90살이던 남편처럼 90살이 된 아내, 지난 65년 동안 남편과 함께했지만 이제 더는 그럴 수 없다. 늘 남편의 뜻을 따라 살던 아내에게 지금의 삶은 때로는 덧없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나 히데코는 다시 의연하게 살아간다. 슈이치는 갔지만 그의 꿈은 자연친화적인 병원으로 이어진다. 그들이 살아왔듯 삶은 그런 것이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 그건 영화 속 대사처럼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다큐를 찍던 중 저세상으로 떠난 슈이치 할아버지에 이어 히데코 할머니도 얼마 후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에 할아버지 곁으로 갔다. 자신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뒷이야기도 들린다. 영화는 노부부를 통해 현명하게 나이 들어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숨넘어갈 듯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에게 속삭이듯 삶의 지혜를 이야기한다.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살라’고.   최선을 다하는 노인의 삶은 아름답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늙어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생에 대해 더욱 완숙해지고, 더욱 풍부해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이 들고 늙는 그 자체가 아니라, 정신의 완숙이 없이 육체만 늙어버린 상태이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가 진실로 싫어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외형의 주름살이나 구부러진 허리가 아니라, 아직도 다스리지 못한 욕망을 덕지덕지 내보이며 생리적 연치만 내세워 심술을 부리는 그런 노년의 상태일 것이다. 집안에도 그렇고, 나라에도 그렇고, 진정한 어른이 건재하고 사랑과 활기에 찬 노인이 계시는 곳은 눈부실 것 같다. 한 살을 더했다. 가만히 시를 음미해 본다.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김지민 기자김건 칼럼 할아버지 슈이치 슈이치 할아버지 노인 소리

2022-02-16

[이 아침에] 차근차근, 그리고 천천히

일요일 새벽 달리기를 나갔다. 동이 트기 전이지만 주말에는 뛰는 사람들이 많다. 3마일쯤 갔을까. 젊은 청년이 의자에 앉아 넋 놓고 거리만 바라보고 있다. 자세도 반듯하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무슨 고민이 많은지 혹시 어젯밤부터 앉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6마일을 돌아 다시 그곳을 지나가는데 그 사람이 그대로 앉아있다. 잊어버리고 한 주가 지나갔다. 그런데 이번 일요일에는 어깨와 팔이 축 늘어져 머리를 푹 숙이고 걸어오고 있다.   젊은 백인 청년이 무슨 변화가 있기에 이런 행동을 할까 걱정이 되었다. 혹시 가족 중에 세상을 등진 사람이 있나 아니면 직장에서 해고 통지를 받았을까, 그것도 아니면 은행에서 집을 압류하여 갈 곳이 없단 말인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뛰다 보니 10마일을 훌쩍 넘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이 다가왔다.     언젠가부터 세상살이에 조급함을 느낀다. 바라는 결과를 빨리 얻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는 먹어 가는데 이뤄 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처럼 빨리 뛰려고 애쓰지 않는다. 시간을 단축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경주를 마치고 몇 시간 걸렸냐고 숨을 몰아쉬면서 묻는다. 조금 빨리 뛰었다고 큰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록 경신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시간에 매달릴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 후르츠’에서 아흔 살의 건축가 츠바타 슈이치 할아버지는 말한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차근차근 시간을 모아서 천천히….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내레이션도 인상적이다. 바람이 불면 잎이 떨어진다. 잎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탐스럽고 맛있는 열매가 여물기 위해서는 바람이 불고 잎이 떨어지고 땅이 비옥해지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이 없다면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히 하나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걸음을 걸을 때도 한 발 한 발 움직임을 알아차리며 천천히 걷는다. 그렇게 꾸준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어딘가에 다다르지 않을까. 그곳이 내가 도착하려고 했던 곳이 아닐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차근차근 천천히 걸어가는 방향이라면 분명 그곳은 원래 가고자 했던 목적지보다도 훨씬 멋진 곳일 테니까.     달리는 버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제자리 뛰기를 한다고 해서 버스가 목적지에 더 일찍 도착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 시간에 흘러가는 창밖 풍경을 감상하거나 버스에 함께 탄 사람들의 온기를 느끼는 일이 더 값진 순간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봤던 그 청년도 지금은 감당하기 벅찬 일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정리를 하고 나면 빈자리가 눈에 보일 것이다. 그 빈자리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차근차근 천천히 메워 가는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귀중한 시간으로 알찬 소득을 얻어 힘들었던 어제의 삶을 바꾸어 놓을지도…. 양주희 / 수필가

202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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